2024 서울시향 김은선과 스티븐 허프 (2024.07.11)

  한참 자라 세일 기간이라 공연 전에 쇼핑을 좀 하려고 한 2시 반쯤 출발을 하니 4시에 도착을 해버렸다. 제주도 놀러 갈 때 수영복 위에 걸칠걸 좀 사보려는 목적이었는데 세일 품목에선 목적에 부합하는 아이템이 없어 애꿎은 가디건 니트탑 셔츠 맥시 원피스 이런 거나 사고 세일 안 하는 것들 중에서 겨우 테리 타월 소재 원피스가 있어 그것도 골라왔다. 맥시 원피스는 다음날 환불했지만..
  동생이 아쿠아 디 파르마 까페가 생겼다고 거기서 보자기에 차에 쇼핑백 갖다 놓고 네이버 지도로 열심히 찾아갔는데 도무지 나오질 않는 거라. 지도 위치가 제대로 안 찍혀 있더라고. 지하 1층 향수 브랜드 모여있는 곳에 있다고 해서 힘들게 갔더니 눈앞에 두고도 그 까페를 못 찾고 일대를 계속 배회하다 겨우 찾아냄. 근데 너무 까페같이 안 생겼잖아 당연히 향수 섹션인 줄 알았네. 어쨌거나 무사히 앉아 바닐라 타르트랑 피스타치오 크림 라떼를 시켰고 라떼는 맛있으며 바닐라 타르트는 조금 더 달았으면 좋겠다 싶었다. 조금 있으니 동생도 와서 카푸치노랑 크로와상이 오렌지 무스케이크를 시켰던 듯. 내가 계속 히츠마부시 먹자고 조르는걸 동생이 무시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공연 때 꼬르륵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선 여기서 이것저것을 먹어두어야 했다.

향수 시향도 할 수 있게 되어있다 심지어.. 내가 못찾을만 했다구 흑흑

  다 먹고 향수 코너를 돌았는데 동생이 착향 한 크리드가 너무 향이 강해서 내가 가지고 있던 딥티크 오르페옹 고체향수로 팔을 다 문질러야만 했다. 나는 제라늄 오도라타랑 오 모헬리를 뿌렸는데 향이 너무 금방 날아가서 구매 의사는 없는 것으로. 그래도 엘리베이터 안에서 누군가의 쉰내가 날 때마다 코에 손등을 대면 향수 냄새에 가려지는 효과가 있었다..

  라피협 3번을 작년 롯콘에서 루간스키와 kbs 연주로 들었을 때의 감상은 피아니스트들 도대체 이 거대한 곡을 어떻게 치는거지?라는 것 물론 루간스키가 진짜 빡쎄게 친 까닭도 있겠지만. 반면 허프경의 라피협은 힘 줄 때 주고 뺄 곳은 빼는 유려함이 돋보였달까 어찌 보면 재즈처럼 느껴질 정도로 세련된 낭만이 느껴지는 지적인 해석이 좋았다. 미국으로 간 러시아 인의 정서가 한껏 드러났달까 물론 이 곡은 미국으로의 망명을 앞두고 작곡된 곡이지만. 앵콜로 친 아리랑와 뮬란 ost 리플렉션의 본인 어레인지 버전에서 또한 느껴지듯 어딘가 얼 와일드의 연주와 편곡들을 생각나게 하기도. 다만 템포를 본인이 원하는 대로 끌고 가고 싶어 하시고 특히 3악장에서 빨라지려고 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는데 김은선 지휘자가 그에 응해주지 않고 오케의 중심을 확실히 잡으려고 해서 다소 재미있는 그림이 나와버렸다.

  김은선 지휘자의 지휘는 처음 보는 것인데 좀 여군 같은 칼각을 요구할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었으나 전혀 그런 스타일이 아니고,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두면서 음악적으로 두드러져야 할 부분을 확실하게 살려주는 생동감 있는 지휘라는 인상이었다. 이런 스타일의 연주는 막 치달아서 빵 터져주는 도파민 뿜뿜 스타일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고 즐거운 연주로 40분 남짓 되는 협주곡이나 교향곡을 지루하지 않게 들려준다는 장점이 있어 나는 좋아한다. 또한 1부에서는 오케에게 과도한 부담이 될 협연자의 템포 업은 응하지 않고 중심을 지켜주었던 점이나 2부 라흐마니노프 심포니 3번이 다소 생소할 단원들을 위해 확실한 디렉션을 주며 음악을 만들어가던 점이 다소 엄하지만 자애로운 어머니를 연상시키게 했다 그치만 실제로 어머니가 아니시라면 제가 정말 죄송합니다..
  난생처음 들은 라흐마니노프 3번은 곡이 다소 디즈니 곡 같은 느낌인데 3악장은 아직 잘 모르겠고 1악장과 2악장, 특히 2악장 하프와 호른이 같이 나오면서 시작하는 도입부가 너무 좋다. 왜 이렇게 좋은 음악이 잘 연주되지 않는 것인지 안타까워 물론 잘 연주되지 않으니까 매일 보물찾기 하는 기분으로 복습도 안 하고 와 이거 첨들어본당 하고 가게 되는 것이겠지요.

돌아가는 길에 본 달이 예뻤는데 이렇게 밖에 찍히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