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시립합창단 정기 연주회 모차르트 레퀴엠 (2024.06.20)

  전날 동생이 집에 와서 같이 술을 엄청 마셨기 때문에 이 날 아침엔 거의 사망상태였다. 필테 다녀와서 다시 잠들었다가 느즈막한 점심쯤 평양냉면과 어복쟁반을 먹으러 겨우 눈을 떴다는. 일산의 자랑 중 하나인 양각도의 본점은 호수공원에 있지마는 최근 애니골 쪽에 분점이 생겨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우리 집이랑 가깝고 주차장도 넓고. 다 먹고 나면 근처 옷집에서 구경까지 하고 가는 게 이 집안의 국룰.

엄청난 비주얼..!! 맛도 있고 양도 많다.

  겨우 숙취에서 벗어나 은혜의 서해선을 타고 또다시 부천 아트센터로. 아직까지도 모바협 5번 레슨을 받고 있으려니 모차르트가 싫어지긴커녕 은근히 좋아져 버려, 게다가 장소도 나름 가까운 부천이고, 티켓 값도 너무 착하고, 고음악 잘하기로 유명한 김선아 지휘자가 레퀴엠을 올린다고 하고, 여러모로 안 갈 이유가 없던 공연이라 하겠다. 내가 가면 요즘 일 없는 동생은 당연히 가겠고 아마추어 합창단을 오래 하고 있는 엄마도 레퀴엠은 가보고 싶다 하여 예매를 하려고 들어갔는데 티켓이 거의 매진이라 괜찮은 자리 구하기가 좀 빡쎘다. 약간 재밌었던 일이 한 자리 구한 다음 며칠 있다가 또 운 좋게 두 자리 연석을 구했는데 자리 배치가 약간 낯이 익은 거라. 그 처음에 구한 자리와 이어지는 좌석이더라고. 그래서 운 좋게도 세 명이 사이좋게 나란히 앉아서 공연을 볼 수 있었다. 이거 완전 럭키비키잖아 ☆

프로그램 팜플렛 안에 있는 곡 설명이 정말 잘 되어 있으니 일독을 추천. 모쪼록 살리에리가 지난한 오해에서 해방되기를 바랍니다..

  아무래도 레퀴엠이 그리 길지 않은 곡이라 1부는 김선아 지휘자의 해설로 채워졌다. 호국 보훈의 달과 레퀴엠이 무슨 상관일까 했는데 호국 영령을 기리는 의미의 레퀴엠이라는 말에 죄송함의 내적 대가리를 박으며 시작.. 처음엔 관객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좀 어색해하는 듯했던 김선아 지휘자는 곡의 해설을 할 때가 되자 뭐랄까 약간 텐션이 달라진 느낌이었다. 마치 오타쿠에게 본진 이야기 물어본 것처럼.. 프로그램 팸플릿 내 이준형 음악평론가의 글 함께 김선아 지휘자의 해설을 들으니 2부의 감상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을 넘어서 안 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

  이번 레퀴엠은 바이어의 수정이 들어가지 않은 쥐스마이어판으로 연주되었다는 김선아 지휘자의 앞선 설명이 있었고, 규모도 그리 크지 않고 템포도 너무 무겁지 않게 가져가서 나는 너무 좋게 들었다. 칼 뵘 레퀴엠 같은 연주들을 들으면 그 장중함에 숨이 막히는데 김선아의 레퀴엠은 정갈하고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생동감 있는 연주였다고 할까 언제라도 장례 미사에서 불려질 수 있을 듯 한. 키리에의 후반부 게네랄 파우제에서 음의 잔향만 깔끔하게 남는 것이 아주 아름다웠고 세퀜치아의 곡들이 각각 묘사하는 것들도 참 잘 살렸다. 특히 모두가 기대하는 라크리모사의 초반 도입부가 아주 기가 막혀서 모차르트가 이 곡을 8마디만 작곡하고 죽었다는 사실이 더욱더 원통하게 느껴졌달지. 쥐스마이어가 애써 마무리한 다소 맥 빠지는 아멘을 실연으로 듣게 된다면 아마 누구라도 모차르트 선생님 제발 무덤에서 나오셔서 16마디 아멘 푸가 완성하고 돌아가세요 하고 슬퍼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설명을 들어서 그런진 몰라도 어째 상투스 베네딕투스 아뉴스데이 이 세 곡은 다소 구조가 밋밋하게 들린다. 뭐랄까 그전까지는 눈물방울을 하나씩 모아 세공한 아름다운 크리스탈 같다가 상투스부터는 뭔가 플라스틱으로 만든 모조품 같달까. 그래도 곡의 거의 대부분의 오케스트레이션을 쥐스마이어가 해내긴 하였으니 이런 생각이 그냥 내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아쉬웠던 건 투바 미룸 트롬본 솔로 아슬아슬했던 거랑 솔리스트들 정도? 그래도 김정미 씨 정말 믿고 들을 수 있는 분이죠 이 날도 너무 훌륭했답니다. 베이스 우경식 씨는 키도 크고 얼굴도 작고 인물도 좋으시더라 인기 짱이실듯. 아무튼 지휘자 합창단 오케까지 다들 잘해주었다 특히 김선아 지휘자의 성실한 해석이 빛을 발한 공연이었다 하겠어요. 앵콜은 모차르트의 아베 베룸 코르푸스. 너무 아름다운 곡이죠 가슴을 움켜쥐며 들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