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오브 인터레스트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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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번에 밥 먹으면서 동생이랑 감독님이 이 영화를 너무 훌륭하다고 칭찬하길래 뭐 어떻길래 그렇게까지?라고 생각하며 예매를 감행, 다 보고 난 후의 소감은 뭐랄까 이렇게 잘 만든 영화를 본 게 얼마만인가? 하는 가벼운 전율이 일었다. 강이 흐르고 나뭇잎이 나부끼는 아름다운 교외의 여름 정경과 단정하게 가꾸어진 집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중산층 가정의 평화로운 일상과 크고 작은 소란들에 대한 다소 소소하고 지엽적인 이야기.. 처럼 시작을 하지만 이내 이 집의 가장이 그 악명 높은 루돌프 회스(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담당 장교) 임이 드러나며 집의 위치 또한 수용소의 바로 옆임을 우리는 눈치채게 된다. 그렇다면 이제 계속 뿌옇게 섞여 들려오는 소음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밤에 피어오르는 불꽃과 연기가 무엇을 태우는 것인지도, 왜 회스 부인의 어머니가 딸의 집을 갑자기 떠났는지도, 왜 유모가 우는 아이를 옆에 내버려 둔 채 밤새 술을 마시는지도, 강물에 섞여 떠내려와 물놀이하던 아이들을 박박 씻기게 만든 그것이 무엇인지도, 회스 부부의 집에서 아름답고 풍성하게 피어난 화초들에게 준 비료가 무엇인지도, 우리는 비로소 모두 깨닫게 된다. 이 영화는 덤덤하고 집요하게 직접적인 홀로코스트 묘사를 배제하지만 실제로 보이는 것 이외의 모든 것으로 그 학살을 느끼게 한다. 특히 음향이 빚어내는 효과가 상당한데 이에 대한 최태영 음향 감독의 인터뷰가 있으니 읽어보면 좋을 듯. 영화에서 냄새까지도 맡을 수 있었다면 아마 이 영화는 더더욱 끔찍한 기분을 선사했으리라 시체 태우는 냄새가 계속해서 났을 테니까..

영화 음향의 공식과 틀을 벗어나,  최태영 음향감독에게 듣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처음엔 그래 장교가 개새끼지 가족들이 무슨 죄겠어 싶지만 어째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 전출 간다니까 응 너 혼자 가 난 이 집 못 떠나 를 시전하고 하녀에게 응 너 같은 건 남편한테 말하면 재로 만들어 버릴 수 있어 라고 인성질하는 부인 쪽도 만만치 않은 개새끼처럼 느껴진다. 참상을 직접 보고 그 끔찍한 일들을 직접 결정해야 했던 회스 장교가 상대적으로 짠해질 지경. 게다가 진짜 뒷배 좀 있다 하는 나찌들이 그런 일을 했으려나 그가 별 쥐뿔 없는 군인이었으니 이런 끔찍한 일에 영혼을 팔아 안정적 생활을 누리려 했으려니 싶고. 그런 지점에서 영화의 제목(The Zone of 'Interest')이 나왔는지? 아무튼 아침에 출근하며 차가운 빌딩의 계단을 내려가다 갑자기 구토를 하는 장교와 겹쳐 현재 박물관이 된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사람들이 청소하는 장면이 꽤 오래 나오는데 이 씬이 영화의 백미이자 과거 중학생 시절 그 박물관에 갔을 때 겪었던 트라우마를 나로 하여금 다시 상기하게 했다. 그곳은 정말 충격적인 곳입니다 화면으로 느껴지는 것 그 이상으로..
  영화의 중간 장교가 두 딸들에게 읽어주는 헨젤과 그레텔 동화와 이어져 한 폴란드 소녀가 깊은 밤 수용소 근처에 먹을 것을 몰래 숨기는 모습이 열화상 카메라 샷으로 등장한다. 영화의 흐름상 뜬금없다고 느껴질 수 있으나 그 모습은 뜻밖에도 굉장히 아름답게 빛난다.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나이트 씬에서 조명을 따로 쓸 수 없어서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할 생각을 했다고. 조더선 글레이저 감독의 인터뷰를 하단에 첨부합니다 읽어보면 재미가 있어요.

[특집] <존 오브 인터레스트>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 가능한 한 모든 면에서 정확하고 싶었다

  이 폴란드 소녀가 피아노를 치는 장면에서 나온 곡은 유대계 폴란드인 수감자가 아우슈비츠 안에서 작곡한 노래라고 한다. 영화에서는 소녀가 멜로디만 연주하는데 독특하게도 가사가 자막으로 깔리고 그 가사와 멜로디가 주는 슬픔과 희망이 마음을 몹시 흔든다. 어떤 영화의 어떤 순간들은 그 영화의 좋고 나쁨과 관계없이 사람의 마음에 어떤 흔적을 남기고야 마는데 이 장면이 바로 그런 순간이 아닐까.

익스트림무비 -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 나오는 피아노곡 소개

  그리고 이 잔인한 이야기를 침 튀기며 흥분하지도 혹은 과하게 무게 잡으며 하지도 않고 그저 일상에 깃든 점잖은 아름다움과 슬픔으로 빚어내는 온도감이 참으로 탁월하다. 이럴 때 비로소 영화는 생명력을 얻어 우리의 삶에 스며드는 것 같다. 그 까닭에 이 가족의 일상에서 느껴지는 안온한 조온습.. 이 내 일상과 비슷하게 느껴질 때마다 나는 문득 두려워지곤 하는 것이다 나 또한 이런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누군가를 착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론 우리 모두는 자본주의 하에서 이러한 원죄를 지녔으되..

  이 영화 보고 약 10분 뒤에 퓨리오사도 예매를 해서 다시 영화관에 들어가 보니까 내가 똑같은 관 똑같은 좌석을 예매했더라고 완전 깜놀. 팝콘 바닥에 떨어트리지 말고 깨끗하게 먹을걸.. 퓨리오사는 그다지 재미있게 보진 않아서 따로 포스트를 쓰지는 않을 것 같음. 액션의 규모가 크긴 한데 신이 나기는커녕 뭐랄까 영화 내내 퓨리오사 장군님 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오신 것입니까.. 하고 절로 숙연해져 버린다. 매드맥스 1편은 진지한 내용이었어도 신나는 똘끼가 있었던 것 같은데 말여. 그래도 안야 테일러 조이의 연기가 상당하다 특히 껌댕이 바른 얼굴 위로 희고 차갑고 빛나는 안광이 단연 압권. 토르는 토르가 아니지만 너무 토르 같은데 토르를 기대하고 캐스팅을 했으니 토르 같은 건 당연할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