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콰르텟 내한 공연 (2024.06.13)

  실내악 공연은 국내 한줌따리 클덕들에게도 그리 메이저한 인기를 누리진 못하고 있는 것 같지마는 실제로 보고 듣다 보면 상당히 재밌는 장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잘하는 현악 4중주단의 공연은 솔직히 웬만한 심포니보다 재밌는 것이 사실. 콰르텟 알못인 내가 이 팀의 이름을 들어보았을 정도라면 잘하는 것을 넘어서 세계적 수준인 바, 이런 공연은 놓치면 저만 손해인 것이에요.
  이 날 공연 전에 신길 쪽에서 친한 임조쌤이랑 빙수를 먹었는데 진짜 더웠다. 이렇게 더우면 7월 8월엔 어떻게 살지? 그쪽에서 예당까지는 초행길이라 약간 서둘러 출발했는데 은근 금방 가더라 봉천로 가는 쪽 길가에 분홍색 예쁜 꽃들도 피어있고. 다 공무원들이 물 주고 하는 걸까? 따위의 생각을 하며 도착해 테라로사에서 오늘의 아이스 드립을 마시고 있으려니 늘 나의 공연 메이트 되시는 동생이 합석. 갑자기 동생 감독님도 이 팀의 담당 매니지먼트 회사랑 아는 사이라 공연에 초대받았다며 또 합석. 감독님은 말을 참 잘하신다 어떤 식으로 잘하시냐면 오랜만에 뵙는데도 마치 잠깐 화장실 갔다 온 사람이 하던 얘기를 마저 하는 것처럼 하심.
  

쇼스타가 11번에서 7번으로 바뀌었다

  콰르텟은 화음에서 서로 음정이 정확히 딱 맞으면 약간 부웅 하면서 공명되는 느낌이 엄청 기분 좋은데 내가 콰르텟 했었을 땐 거의 뭔 가뭄에 콩 나듯 한번 날까 말까 하던 게 역시 프로 팀들은 첫 시작부터 빵 하고 터져준다. 저렇게 연주할 수 있는 사람들 네 명이 모여서 연주를 하면 얼마나 재미가 있을까 흑흑. 전체적으로 저현이 두드러지는 부드럽고 다정한 사운드를 가진 팀이라는 인상에 리듬감도 너무 좋고 박력도 짱짱. 이 날의 연주는 비올라가 가장 잘 긁힌 날이었던 듯. 첼로 소리가 참 좋았고 퍼스트는 당연히 잘하지만 컨디션이 좀 별로였는지 전반적으로 미스가 좀 있었다. 근데 뭐 그런 게 중요하겠어요 합도 너무 좋고 음악도 너무 잘 만들면 짱 재밌는 공연이 되어버리는 것이에요. 게다가 첫 곡이었던 스메타나 1번이 쌩 초면이었으나 웬걸 너무 좋아서 완전 깜짝 선물 받는 기분이 됨. 예습을 안 해가면 종종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답니다 ^^b. 특히 2악장은 너무 사랑스럽고 즐거운 춤곡풍이라 들으면서 너무 행복했고 3악장은 가슴이 저미듯 아름답고 슬퍼 내적 눈물을 찔끔 흘림.

사실 거를 타선이 없는 띵곡

  쇼스타는 사실 내가 잘 몰라서 뭐라 말할 수가 없.. 지만 동생이 참 좋아한다. 그의 곡들은 뭐랄까 나한테는 멜로디가 뚜렷하지 않아서 듣고 있다 보면 노래가 아니라 악기군들이 사람 말을 하는 것처럼 들릴 때가 있다. 그런 점이 매력인 걸까? 베토벤 8번은 저번 에머슨 콰르텟 내한 때도 들었던 곡인데 이 역시 띵곡입니다. 특히 2악장 아 너무 좋지 않나요 저는 베현사의 이런 느린 악장을 들으면 숭고한 아름다움과 부드러운 슬픔에 가슴이 저려와요 흑흑 (오타쿠의 급발진). 4악장은 되게 신나고 정신없는데 이번 공연에서 짱빠르게 연주해서 더 신나는 엔딩이 되었다.

  앵콜은 멘델스존 1번 2악장 칸초네타와 바르톡 4번 4악장 피치카토. 쇼스타 들을 때도 그랬지만 바르톡도 아 이거 동생이랑 감독님이 좋아하겠네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공연 끝나고 얘기하는데 정말로 쇼스타랑 바르톡 빨리 어디 가져다 써야겠다고 해서 너무 웃겼음. 암튼 공연 끝나고 감독님 모셔다 드리고 동생도 내려주고 하려고 했는데 내가 너무 배가 고파서.. 게다가 감독님이 콰르텟 단원들과 인사해야 하는 상황인데 팬사인회가 있었기 때문에.. 일단 우리끼리 밥 먹으러 갔다 맨날 가는 그곳 오만지아.

달 밝은 밤이었죠 대략 10시 반

  여기는 음식들이 약간 짜긴 한데 넘넘 맛있음. 맨날 예당 갔다가 오는 곳이라 막상 오면 와인을 많이 못 마셔서 슬프다. 뭐 마시려면 마시고 대리 불러도 되지만 참 이 택시비는 별로 안 아까워도 대리비는 쫌 아깝게 느껴지는 게 나뿐만은 아닐 거야.

  막 먹으려는데 때마침 감독님도 인사 끝내고 오셔서 같이 먹으면서 지난 유럽 여행 썰을 풀어주셨다. 특히 베를린 클럽 얘기랑 그 무슨 유명한 극장에서 본 래디컬좌파페미연극 얘기가 너무 충격적이었음. 베를린은 엄청난 곳이구나.. 뭔가 무서워서 약간 가고 싶지 않아 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