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퀸콩에 대한 사견

  간혹 콩쿨을 현지시간에 맞춰서 생방으로 챙겨보시는 엄청난 분들이 있던데 나는 그 정도의 열정은 못되어서 그냥 결과 나오면 좀 보고 마는 게 보통이다. 그것도 그냥 간단한 감상 정도이지 뭐 내가 딱히 전공생도 아니고 내 실력으로 켤 수도 없고 악보도 모르는 곡을 평가한다는 것이 좀 스스로에게 우습지 않나 싶지만? 또 막상 보면 방구석 심사위원에 빙의해서 얘는 이렇고 쟤는 저렇고 구구절절충이 되는 게 콩쿨의 묘미겠지요. 허허..
  그래서 이번 퀸 엘리자베스 콩쿨도 사실 볼 생각은 없었으나 말이 너무 많길래 아니 뭔데 이렇게 말이 많나 싶어서 스스로의 호기심을 죽이지 못하고 파이널 무대를 보는 업보를 저지르게 되었으니. 얘기되는 몇 명의 파이널 무대만 본 얕은 감상평은 다들 비슷비슷한 실력에 특별히 큰 의문이 있는 결과는 없지 않았나 싶다. 다만 1위를 한 우도비첸코의 국적(우크라이나)과 선곡(러시아 작곡가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했으며 이 곡은 우크라이나 태생의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에게 헌정되어 오이스트라흐에 의해 초연되었다), 심사 위원인 바딤 레핀(러시아 태생의 바이올리니스트로 그의 부인 스베틀라나 자하로바는 볼쇼이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이자 열렬한 푸틴 지지자이다)과의 악수 거부 등등의 이슈로 인해 그의 우승이 실력이 아닌 정치적인 선택이 아니냐 라는 말이 있었다. 근데 1위 받을 만하던데..?

(하단의 파란색 글씨를 클릭하면 퀸 엘리자베스 콩쿨 사이트에서 해당 아티스트의 연주 전체를 감상할 수 있다.)

  일단 파이널리스트 12명 중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한건 1위의 우도비첸코, 3위의 한국계 엘리 최, 4위의 케빈 주, 6위 이내에 들지 못한 최송하 이렇게 네 명이었다. 쇼바협은 올해 교향악 축제에서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원과 경기필의 연주 이승원의 지휘로 감상할 계기가 있었다. 그때 곡이 참 무겁고 빡쎈 곡이라 생각을 했었는데 이번 파이널에서 네 명이나 하다니 정말 듣고 싶지 않았어..

2005년 퀸 엘리자베스 콩쿨 우승자 세르게이 하차투리안(작곡가 아람 하차투리안과는 혈연관계가 없다 한다)이 파이널에서 연주했던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 협주곡. 작년 내한했을 때 못가서 아쉽다 🥲

Dmytro Udovychenko

몇 군데 미스들이 아쉽긴 했지만 해석력이 탁월했다. 몇몇 부분들은 듣다가 약간 소름이 돋을 정도. 특히 이 하이라이트 영상의 2악장 마지막은 점점 고조되는 긴장감을 너무 잘 살렸다. 본인이 이 곡을 정말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 낸 듯.

Elli Choi

톤이 깊고 사운드가 풍부하다. 이번 참가자들을 통틀어 소리 자체를 놓고 본다면 가장 마음에 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테크닉도 좋은데 다만 스타일이 이 곡과 어울리는지는 의문. 브람스를 했으면 1위를 다퉈볼 수 있지 않았을까?

Kevin Zhu

이 친구가 우승했어야 한다는 댓글도 많고 테크닉이 굉장하다던데 첫 악장 도입부터 해석이 너무 특이해서 차마 더 듣지 못하고 하차했다.. 죄송합니다.. 그래서 뭐라 평가할 것도 없고 다시 들을 마음도 없는.. 죄송합니다 2.. 다만 이 하이라이트도 네 너무 강하게 켜면 쳐지니까 리듬감이 안 살아서 지저분하게 들리는.. 죄송합니다 3..

SongHa Choi
(등수가 없어 개별 페이지가 존재하지 않는 관계로 파이널리스트들의 영상을 모아놓은 페이지로 대신한다)

6위 안에 들었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좋게 들었다. 개취로 엘리 최보다 곡 해석이 모던 깔끔해서 더 마음에 들었는데 결과가 아쉽게 되었다.. 테크닉이 부쳐보이는 점이 마이너스로 작용했으려나?

  엘가 바이올린 협주곡도 유다윤과 요시다 미나미 두 명이 선택을 했다. 엘바협은 처음 들어보는 듯. 악장쌤은 노잼이라고 디스 했는데 제 귀엔 충분히 아름다운 곡으로 느껴져요.

제임스 에네스가 연주하는 엘가 바이올린 협주곡. 퀸콩 공식 계정에 올라온 영상 중에 찾으려 했으나 없더라고 올해만 이례적으로 두명이나 연주한 것인가. 아무튼 언제 내한하세요 제가 22년도엔 못갔어요 🥲

Dayoon You
(등수가 없어 개별 페이지가 존재하지 않는 관계로 파이널리스트들의 영상을 모아놓은 페이지로 대신한다)

미스들이 좀 아쉽긴 했지만 좋은 연주였고 무엇보다 이 곡을 좋아하는 게 잘 보였다. 특히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내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어버림. 6위의 미나미 연주와 비교했을 때 몰입감은 더 좋았던 것 같아 결과가 아쉽게 되었다..

Minami Yoshida

역시나 미스들이 좀 아쉬웠고 유다윤보다 등수가 높았던 이유는 글쎄 톤이 좀 더 깊고 풍성해서이지 않았을까 싶다. 중간에 호른인가 대박 삑살 있어서 듣던 내가 다 놀래버림 ^^;

  2등을 한 제임스 브라운은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했다. 좋은 곡이지요 참 어렵다고도 하고. 이 곡은 작년 런던필과 에드워드 가드너(주먹왕 존 엘리엇 가디너 아님)가 내한했을 때 크리스티안 테츨라프의 연주, 올해 서울시향과 손열음의 협연이 공연 바로 전날 취소되고 그 대타로 무려 힐러리 한이 섰을 때 이렇게 두 번 실연으로 들었다. 이 곡도 참 지배하기가 어려운 곡이지요 사실 쉬운 바협이 어디 있겠냐 마는. 테크닉도 테크닉이지만 조성이 애매한 곡은 좀 음이 틀려도 내가 악보를 알지 않는 이상 나의 막귀로는 잘 감지가 안되는데 이런 조성이 잘 갖춰진 음악은 음이 틀리면 악보를 몰라도 들리기에 금방 티가 나서 더 어려운 것 같다.

2015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 임지영이 파이널에서 연주했던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이 때의 그녀는 사라졌어 돌아오지 않아

Joshua Brown

톤은 예쁜데 참 이 곡이 난곡이긴 한 것 같다. 1악장 요아힘 카덴짜 참 어렵쥬? 허헣.. 그래도 몰입도는 참 좋았다 일단 그의 표정을 보시라 ^^; 미스들이 아쉽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었고 어떤 연유에서 2등을 줬는지는 대략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듯.

  그리하여 말이 많았던 2024년 퀸콩 파이널 무대를 대충 들어본 개인적인 견해를 갈음하자면 이번 2024 퀸콩 순위에 큰 이견은 없으며 심사위원들이 나보다 바이올린 끈이 얼마나 길텐데 내가 못 듣는 것까지 다 듣고 줬지 않겠냐 무려 퀸콩인데, 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나머지 파이널리스트들의 연주는 듣지 않았지만 들을 예정이 없어서 굉장히 신용도가 약한 피상적 견해라는 것을 주지해 주었으면 한다. 차바협은 들을 용기가 없어 약간 지겨워.. 아무튼 방구석 심사위원 놀이만큼 짜치는게 없는데 그 짓을 제가 해버렸다는 점에서 반성합니다. 이만치 했으니 아닥하고 제 연습이나 하러 가야겠어요 ^.ㅜ